막걸리는 누가 만드는 걸까요? 막걸리는 곡주이고, 주재료가 쌀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강국인 조국의 힘을 빌려 초록 창에 조심스레 ‘막걸리 만들기’를 검색했습니다. 생각보다 막걸리 만들기 키트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둘 다 몹시 많았습니다. 물 넣고, 가루 넣고, 24시간만 발효하면 된다는 강력한 제품 소개에 이끌려 홀린 듯 막걸리 키트를 결제했습니다.

막걸리 키트는 이틀 만에 배송되었지만 막걸리를 만들 용기(그릇 말고)까지는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10리터짜리 된장 발효통을 정성스레 씻어서 말린 후 물 3.2리터를 넣고 막걸리 키트가루를 붓고 휘휘 저었습니다. 고민한 게 무색하게도 5분 만에 끝. 가루가 떡이 되어서 물에 융화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했지만 원래 그런 거라고 해서 애써 발효통 뚜껑을 닫았습니다. 문제는 온도였습니다. 막걸리를 발효하는 데 가장 좋은 온도는 섭씨 23~30도라는데,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였죠. 일단은 판매자의 조언대로 이불로 감쌌습니다. 통을 감싸고 두자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결국 막걸리가 추울 것 같아 그날 밤 보일러를 틀었습니다. 혹시라도 발효 타이밍이 어긋날까 봐 ‘막걸리 구출 시간 알람‘도 맞췄습니다.

24시간 후, 막걸리 통을 열었는데 떡이 되었던 가루들 이 하얗고 뽀얀 막걸리로 변해 있었습니다. 미리 소독해 둔 유리병과 여분 페트병에 막걸리를 옮겨 담고 냉장 숙성을 시작했죠. 냉장고에서 최소 24시간은 숙성해야 하고, 오래 숙성할수록 술맛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막걸리 키트를 살 때만 해도 그냥 대충 만들고 마시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걸리는 좀 복잡한 존재였습니다. 주기적으로 너무 많이 저어서 신경 쓰이고, 간밤에 추울까봐 신경 쓰이고, 통이 작아서 터질까봐 신경 쓰이고. 나중에는 급기야 너무 맛있을까봐 신경 쓰였습니다.

작은 개복치를 키우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막걸리가 익어가서 아침이 기다려지고, 회사에서는 막걸리 근황이 궁금해서 애가 탔습니다. 퇴근해 돌아오니 다행히 발효가 좀 되었는지 페트병이 꽤 부풀어 있었습니다. 아침에 봤으니 몇 시간 만에 보는데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막걸리는 무럭무럭 익고 있었고, 이제 앞으로 몇 시간만 더 기다리면 되었죠.

수제 막걸리는 생각보다 관심받기 좋은 아이템이었습니다. 한 거라고는 물이랑 가루를 섞고 며칠 기다린 것 밖에 없는데 관심은 끊일 줄 몰랐습니다. 막걸리가 익어가면 동시에 주변의 관심도 무르익고, 막걸리가 발효하면 주변의 관심도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죠. 누구나 막걸리를 만드는 시대가 올 줄이야. 숙성 48시간 만에 맛본 막걸리는 정말 딱 막걸리 맛이었습니다. 시판 막걸리보다 특출 나게 뛰어난 점은 없었지만, 막걸리를 창조해 냈다는 것 자체로 자존감이 몹시 높아졌습니다.

- '행복한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