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을 물에 말아, 맛있는 열무 한 조각 올려 먹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게 궁색 맞아 보이는지, 불 앞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뜨끈한 음식을 한상 차려 숟가락을 들게 합니다. 그것이 내리사랑이라, 너무나 감사하지만 공식적으로 찬 음식을 먹는 날이 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지기는 몰랐던 날을 하루 더 알게 되었고, 어쩌면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눈이 녹기 시작하고 개구리는 깊이 자던 겨울잠에서 하나 둘 깨기 시작합니다.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고, 하늘이 차츰 맑아지면 봄의 날씨가 가장 좋은 날에 이릅니다. 24절기 중 봄의 절기(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를 이렇게 쉽게 풀어만 놓아도 한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동지로부터 105일 째 되는 봄의 가장 좋은 날에는 특이한 봄의 세시풍속이 있는데요. 바로 찬 음식을 먹는 날입니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는 이 한식날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촌에서는 한식날을 기준으로 씨앗을 심거나 파종을 하는데, 식목일을 정한 기준도 한식날의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가진 청명(24절기)과 날이 자주 겹치는데요. 하늘이 맑아지는 날 찬밥으로 몸을 정화시켜보라는 뜻일까요. 가장 유력한 가설로는 고대의 개화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한국에서 한식을 명절로 여긴 시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려 문종 24년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는 봄에 피는 진달래로 화전을 부쳐 먹거나 쑥으로 만든 쑥떡과 쑥국 등 미리 익힌 음식으로 한식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또한 전날 만들거나 미리 준비한 술, 과일, 국수, 떡, 탕, 포 등을 산소에 가져가서 제사를 지내고 무덤을 살폈다고 하네요.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을 때는 그나마 한식을 챙겼다고도 하는데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희미해져 한식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몰랐던 날을 알게 되었다면 찬밥을 물에 말아, 열무 한 조각 얹어 먹는다거나 메일국수 한 그릇을 가볍게 비워내는 건 어떨까요. 부모님이 속상해 하신다면 슬쩍 한식날을 얘기해 보는 거죠.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고 발상 또한 다양하듯이, ‘세시풍속’이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명랑한 날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소풍을 떠나긴 힘들겠지만 이렇게라도 한식날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불앞에 서지 않는 날이라니. 옛날이라면 그 전날이 불 앞에서 오래 서 있어야 하는 뜨거운 날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더 시원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지기는 가장 좋은 봄의 날씨를 여러분과 함께 맞이할 수 있어 기쁜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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